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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사고력이 밥 먹여준다

논리학, 배고픈 학문에서 모든 지식의 기초체력으로 화려한 부활

논리학이 뜬다. 법학,경제·경영학 등 이른바 '실용학문'에 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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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대받던 논리학(논리철학)이 요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논리학은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기원 전 5세기 고대 그리스 학생들에겐 필수과목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집대성하고 데카르트,칸트를 거쳐 유럽 지식체계의 밑바탕이 된 논리학이 21세기 한국에서 화려한 르네상스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그동안 단순 암기 지식 위주였던 국내 교육시스템의 일대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무슨 소리냐고? 주변을 둘러보자. 시행 10여년을 맞은 대입 논술시험은 이제 논리의 그물망으로 학교에서 배운 교과지식을 유기적으로 한 데 묶는 통합논술로 진화하고 있다. 논리적·수학적 지능을 일깨우는 스도쿠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공직자를 뽑기 위한 국가시험과 기업 입사시험도 급속히 변하고 있다. 암기지식을 묻던 고시 1차 시험이 논리·추리력을 측정하는 PSAT(공직자적격시험,Public Service Aptitude Test)로 대체됐다. 정부 중앙인사위원회는 2004년 외무고시 1차 시험에 도입한 PSAT를 행정고시로 확대한 데 이어 앞으로 공무원 7,9급 시험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또한 삼성그룹의 입사시험인 SSAT(삼성직무적성검사,Samsung Aptitude Test)는 두 시간에 200문항을 풀도록 하는데 논리력,사고력,이해력,상황판단력을 어느 정도 갖추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2009년 3월 문을 여는 로스쿨의 입학시험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하는 LEET(법학적성시험,Legal Eudcation Elgibility Test)로 치러진다. LEET는 객관식 문제이지만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논리력과 추론능력,이해력을 묻는 시험이 될 것이라고 한다. 법전을 달달 외우고 치는 기존 사법고시와 달리,논리학적 토대 위에 언어감각이 뛰어나거나 철학,역사학 등 기초학문을 제대로 닦은 사람이 더 유리해진다.

이들 시험은 한결같이 난해하다기 보다는 짧은 시간 내에 분석,추론,비판,상황 판단,제목 파악 등 다양한 능력을 발휘해야 통과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단순히 기출문제를 암기만 해선 풀 수 없다. 문항별 지문은 경제학,인문·사회과학,자연과학,통계 분야에서 두루 나오지만 문제에서 묻는 것은 바로 논리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논리적 사고 위에서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이 같은 주요 시험제도의 변화는 앞으로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와 대학 모두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 위에서 다양한 공부를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일선 학교에선 논리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에 크게 미흡한 게 현실이다.

21세기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으로 생각하고,표현할 줄 아는 인재를 요구한다. 따라서 논리학을 포함한 철학은 그동안 취업에 도움이 안되는 '배고픈 학문'에서 모든 지식의 기초체력이 되는 '밑바탕 학문'으로 각광받게 될 전망이다. 미운 오리가 백조로 탄생한 셈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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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의 짜릿한 세계

논리학은 생각의 구조와 회로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각의 영역을 설명의 영역으로 바꾸는 기술이기도 하다.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논리적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는 "천편일률적인 논술답안을 보다 눈이 번쩍 떠지는 경우가 있는데,참신한 아이디어를 명쾌한 논리로 풀어가는 글을 볼 때 그렇다"고 말했다. 도대체 논리학이 뭐기에? 논리학의 세계를 살펴보자.

◆진리탐구의 방법,논리학

논리학은 사유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영어의 Logic은 "말,사상,이성,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Logos에서 유래했다. 학문 명칭에 붙는 '-logy'(예:biology)도 여기서 나왔다. 따라서 Logos는 진리이고,논리학은 진리 자체가 아닌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논리학은 변증법의 발견자로 알려진 제논을 시조로 생각한다. 이어 소피스트(궤변론자) 시대엔 교묘한 주장으로 재판 등에서 상대방을 논파하는 변론술이 발달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추구하는 대화법으로,플라톤은 개념 분류법으로 논리학 토대를 닦았고,아리스토텔레스는 '오르가논(Organon)'을 통해 학문으로 체계화했다.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논리학은 진보도 퇴보도 하지 않았다"며 그를 '논리학의 아버지'라고 평가했다.

◆논리학의 세 법칙

체계화된 논리학은 사유의 두 방법인 연역법과 귀납법으로 나뉜다. 현대에 와서는 기호논리학이 추가되지만,고교생 수준에선 형식논리학이면 충분하다. 연역법은 전체(보편 명제)에서 개별(부분 명제)로 내려오는 과정인 반면 귀납법은 부분에서 전체로 추론해 올라가는 과정이다.

논리학에는 세 법칙이 있다. 즉 "A는 A이다"처럼 참인 명제는 참이라는 동일률,어떤 명제도 동시에 참이면서 거짓일 수는 없다는 모순율,어떤 명제도 참이나 거짓일 뿐 중간은 없다는 배중률(排中律)이 그것이다. 이들 법칙은 추리의 기본원리가 된다. 셜록 홈스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삼단논법,논리와 오류의 경계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론화한 삼단논법(syllogism)은 2개의 전제와 1개의 결론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모두 죽는다"(대전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소전제)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결론)라는 논법이다.

삼단논법은 논리적이긴 하지만,현실에선 무수한 오류의 근원이 된다. 이를 테면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천주교도로 사형,유배형에 처해진 것도 삼단논법의 오류에 기인한다. 당시 반대파의 상소문은 "모든 천주교도들은 천주교리 서적을 읽은 자이다. 정약용은 천주 교리 서적을 읽은 자이다. 따라서 정약용은 천주교도이다"의 논리구조였다. 이는 '천주교리 서적을 읽은 자'라는 개념이 한 번도 주어가 되지 못해 생기는 '중명사 부주연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어이쿠 어려워!) 이런 오류 구조는 "모든 개는 포유류다. 모든 고양이도 포유류다. 따라서 모든 개는 고양이다"라는 잘못된 논리와 다를 것이 없다.

◆패러독스와 딜레마

패러독스(paradox)는 역설,이율배반이란 의미다. 명백히 거짓인데 참으로 보이거나 또는 그 반대인 경우와 오류가 없어 보이지만 결국 논리적 모순을 낳는 궤변이 패러독스다.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은 참인가 거짓인가)과 버틀란드 러셀이 만든 이발사의 역설(세비야의 이발사가 "나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들만 면도를 해준다"고 했다면 이발사는 누가 면도해주나) 등이 유명하다.

딜레마(dilemma)는 양도(兩刀)논법으로 번역되지만,오래전부터 진퇴양난이란 의미의 일상용어로도 쓰인다. 예컨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성을 사수하면 백성과 군사가 전멸하고 항복하면 천추에 한을 남길 것이다. 사수하거나 항복해야 한다. 따라서 전멸하거나 천추의 한을 남길 것이다"와 같은 논법이다.


참고도서

▷김용규 '설득의 논리학'(웅진지식하우스,2007)
▷시와다 노부시게 '논리학 콘서트'(바다출판사,2006)
▷마틴 가드너 '이야기 파라독스'(사계절,2003)
▷윌리엄 파운드스톤 '패러독스의 세계'(뿌리와 이파리,2005)
▷줄리언 바지니 '유쾌한 딜레마 여행'(한겨레출판,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