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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생활/직장생활

회사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한겨레] 능력 뿐 아니라 사생활과 인간관계까지…평가를 넘어 감시가 된 인사관리의 스트레스

▣ 최은주 기자flowerpi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eyeshot@hani.co.kr

한 재벌그룹 마케팅팀에서 일했던 김영아(가명·30)씨는 얼마 전 회사 팀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직을 하기 위해서다. 팀장은 뜬금없이 김씨에게 “애인은 아직 우리 회사 계열사에서 일하고 있나?”라고 말했다. 김씨는 깜짝 놀랐다. 회사의 어느 누구에게도 애인이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들끼리 얘기할 때 ‘사람 셋 이상만 모이면 어디선가 감시카메라가 나타난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는데,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무시무시한 ‘인사 X파일’

회사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업무와 관련된 능력과 자질뿐만이 아니다. 당신이 100m를 몇초에 뛰는지, 돈 씀씀이는 어떤지, 바람을 피우는지, 좋아하는 드라마는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신의 ‘직장인 스트레스’에는 무거운 돌덩이가 더 얹어진다. 놀라지 마시라. 회사는 당신이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조차 알려면 안다!

회사 인사부는 당신에 관한 모든 정보들이 들고 나고, 선택되고 취합되는 ‘길목’이다. 한 재벌기업 인사부 차장 ㄱ씨는 “직속 상사가 ‘독심술’이 있다고 느껴질 때 설마하고 고개를 흔들지만 설마가 진짜일 수 있다”고 말한다. “회사는 일종의 ‘팬옵티콘’(죄수들을 감시하는 원형감옥)이고, 인사부 직원은 동료 사원을 관찰하는 ‘감시자’라고 보면 돼요. 입사하는 순간부터 팬옵티콘에 들어오게 되는 거죠. 교육을 받을 때도 교육실마다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어요. 카메라를 통해 강의를 듣는 태도가 어떤지 누구와 친한지 등 기본 정보를 얻게 되죠.”

회사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 사원에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꼼꼼하고 치밀한 인사관리가 ‘관찰’과 ‘평가’를 넘어 ‘감시’와 ‘억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직원 개개인이 기분 나쁘고 치사한 일을 겪을 수도 있지만, 인사상 불이익이나 제 발로 걸어나가는 일까지 생길수도 있다. 올 초 발행돼 직장인들의 필독서로 떠오른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신시아 샤피로 지음, 선돌 펴냄)은 “모든 회사에는 제거하려는 직원들의 블랙리스트가 있다.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하려는 직원들의 명단도 있다”고 무시무시하게 경고한다.

인력관리로 유명한 한 재벌기업 인재개발부에서 일했던 박정식(29)씨는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실력 이외에 다른 것들이 인사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부 직원들은 회사의 ‘~카더라 뉴스 기자’”라고 덧붙였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관리하듯 사원들의 인사기록부를 관리합니다. 실적, 능력뿐만 아니라 성격, 친소 관계, 주량, 술버릇, 사생활, 퇴근 뒤 생활 등 갖가지 정보를 모읍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건강, 말투, 버릇, 옷차림까지 관리하는 세부사항이 늘어나죠. 집을 24평에서 36평으로 옮겼다더라, 어디에 주식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봤다더라 등 정보를 정리해서 최고경영자(CEO)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고를 합니다. 일종의 ‘인사 X파일’이죠.”

이메일 검열·MSN 메신저 모니터링은 기본

재벌기업의 경우 ‘지주회사’의 인사부는 주로 임원들을 관리한다. 계열사 인사부는 누구는 마케팅부, 누구는 기획부 식으로 부서를 나눠 맡아 정보를 수집한다. 정보 수집은 다각도로 이뤄진다. 그런 탓에 ‘정보수집원’인 인사부 직원들은 그들대로 스트레스를 겪는다.

한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했던 김지석(가명)씨는 “밥도 마음대로 못 먹었다”고 말했다. “인사팀 사람들끼리만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대표이사를 만난 적이 있어요. 대표이사는 인사팀장에게 ‘인사팀 직원들끼리 밥 먹지 말 것’을 지시했죠. 다른 부서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서 정보를 얻으라는 거죠. 그때부터 우린 오전 10시만 되면 다른 팀 사람들과 약속을 잡느라 바빴어요.”

한 대기업 인사팀의 ‘직무분석표’를 보면 ‘인사 대상자의 현업 평판 파악’ 외에도 ‘평상시 평판 파악’과 ‘신변 파악’이 적혀 있다. 이를 위해 “사적인 교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회사 인사부에서 일했던 한 사람은 “사적인 교제라는 것은 술자리와 식사를 의미한다”면서 “한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인사정보를 얻으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직무분석표’에는 “인사 승진자들의 노조 탈퇴를 권유한다”고도 적혀 있다. 이 인사는 “정례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자의 성향과 임직원과의 관계”라고 말했다.

회사는 왜 이렇게 직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들까? 황선길 ‘잡코리아’ 컨설팅사업본부장은 “코드를 잘 맞춰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선의의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불만분자를 사전에 막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개인의 신상 변화가 회사 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예방 효과도 있다. 주식 때문에 빚더미에 앉은 사람을 돈 만지는 부서에 보내지 않거나, 추근거림이 많다고 소문난 사람을 특정 부서에서 배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인사부가 모든 직원들의 인사정보를 시시콜콜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직원 개개인의 인사 정보를 얻는 쉽고 빠른 통로는 직속 부서장이다. 헤드헌팅 회사 ‘커리어케어’의 신현만 사장은 “인사에서 팀장의 의견은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인사 영향력이 막강한 부서장들은 직원들을 어떤 방식으로 관찰할까? 팀장의 성격과 스타일에 따라 제각각이다. 하지만 유능하고 부지런한 상사라고 해서 직원들의 인사 정보를 유능하고 부지런히 얻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파악하고 평가하는 일에는 ‘감정’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 수단도 ‘허걱~’스러운 게 적지 않다. 이메일 검열과 MSN 메신저 모니터링은 기본이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 기획팀 팀장이 된 김창식(가명·38)씨는 자신이 맡게 된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고, 직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MSN 스니퍼’라는 MSN 대화 내용을 모니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몰래 깔았다. 덕분에 직원들의 신변은 물론, 사내 불륜, 자신에 대한 뒷담화 등 온갖 얘기들을 알게 됐다.

“팀장 새로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밥도 한 번 안 사주는 것 봐. 짠돌이 자식.”

“저거 봐라. 또 지 잘난 척하고 있네.”

감시가 물고 물리는 거대한 원형감옥

충격을 받은 김 팀장은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술을 구사했다. 좋게 말하면 ‘당근과 채찍’이었다. 자신을 ‘짠돌이’라고 살짝 불평한 직원에게는 근사하게 점심을 사줬지만, 심한 험담을 한 직원에게는 몽땅 일을 맡기거나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도 했다. 하지만 점점 더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한다. “사람들을 믿기 어려워졌어요. 직원들 대화 모니터링을 안 하면 불안하기도 했고요.”

그의 팀원들은 이걸 모르고 있을까? 직원들도 상사의 정보를 나름대로 수집·관리·공유한다. 이 땅의 수많은 ‘김 팀장’과 ‘직원들’이 물고 물리는 인사 정보 혹은 신상 정보 ‘포인트’를 적립하는 동안, 우리의 회사는 또 다른 ‘인재’를 구하고 그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궁리한다. 회사는 확실히 팬옵티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