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와 생활/채용/취업 뉴스

기업들, 직원 학력-경력 정밀 검증 움직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아일보]

국내 홍보대행사인 A사는 올해 초 미국 대학을 졸업했다는 경력사원 B 씨를 채용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거래처인 외국계 기업 측이 B 씨가 작성한 영문 서류에 대해 “영어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며 거세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B 씨에게 재차 확인한 결과 미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1년 다녀온 게 전부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는 결국 자진 퇴사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로 다가온 본격적인 하반기 공채 시즌을 앞두고 학력과 경력을 속이는 구직자를 솎아 내기 위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 “회사 2번만 옮기면 학력 세탁 가능”

중견 제약회사인 중외제약이 직원들의 학력 검증에 착수하기로 한 사실이 27일 알려지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헤드헌팅 업계에 학위 조회 방법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본보 27일자 A2면(일부 지역은 A1면) 참조

9월부터 기업과 대학 등을 대상으로 ‘학력검증대행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대학교육협의회의 관계자는 “오늘 오전에만 정부기관, 대학 등에서 학력 조회 방법과 비용 등을 묻는 전화가 10여 통 걸려 왔다”며 “200∼300명의 조회가 가능한지 묻는 전화도 왔었다”고 말했다.

중외제약 관계자는 “학력검증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신입사원 공채에서 최종합격자를 대상으로 학위 조회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력이나 경력을 허위로 기재하는 ‘학력 세탁’이나 ‘경력 세탁’은 신입사원 공채보다 경력사원 채용 과정에서 더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력사원은 이전 회사 경력 외에 최종학교 졸업증명서를 요구하는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헤드헌팅 업체 출신의 국내 중소기업 임원은 “취업시장에서 회사를 2번 정도만 옮기면 ‘학력 세탁’이 가능하다는 말도 있다”며 “대기업의 유명 브랜드를 개발했다는 사람만 10명 이상 봤을 정도로 ‘경력 부풀리기’도 많다”고 말했다.

육근열 LG화학 HR부문장(인사담당 부사장)은 “공채 방식으로 해외에서 학위를 딴 직원을 채용하면 검증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이런 문제가 나오지 않도록 대다수 대기업은 해외 대학으로 직접 가서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상황은 다르다. 인사만 전담하는 인원이 많지 않은 데다 전문 헤드헌팅 업체에 의뢰해 학력과 경력을 검증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보험중개업체 A 사장은 “허위 학력을 기재하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며 “기존 직원의 추천을 통해 능력과 평판에 의존한 채용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허위 학력과 경력 적발해도 징계는 쉽지 않아

기업이 입사 이후 ‘학력 세탁’과 ‘경력 세탁’이 확인하더라도 그 직원을 징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 일각에서는 허위 학력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학위가 요구되는 교수와 달리 기업체 직원은 학력보다 능력이 우선”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국내 대기업의 한 인사 담당 임원은 “과거 허위 학력이 드러난 직원이 자진 퇴사한 사례가 있다”며 “법적인 문제 때문에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이 분명하지 않다면 해고 등의 징계를 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소명 경수근 변호사는 “회사가 허위 학력자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해고하거나 징계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라며 “다만 박사 학위가 취업의 자격 요건인 연구원처럼 특정 업무와 허위 학력 기재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 해고나 징계 사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각 기업에서는 이번 파문을 계기로 직원 채용 과정에서 학력을 정밀 검증하는 움직임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