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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생활/직장생활

경기복 하나로 세계 모터사이클 시장 쥐락 펴락

'경기복' 하나로 세계 모터사이클 시장 쥐락 펴락
[기업탐방]한일, 세계시장 40% 점유 100% 향해 '질주'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극한의 스피드 스포츠 모터사이클 레이싱. 레이서들은 0.01초라도 랩타임(lap-time)을 줄이기 위해과 생명을 건 위태로운 질주를 벌인다. 이들에게 안전장치라곤 단지 헬멧과 특수 제작된 '경기복(racer-suits)' 뿐.
 
머리만을 보호하는 헬멧과는 달리 경기복은 착용자의 팔·다리와 몸통, 즉 두부(頭部)를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분을 보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강화플라스틱을 비롯, 특수 처리된 가죽 등 다양한 소재가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안전성을 중시하기 위해서는 경기복의 주재료가 되는 가죽 층이 두꺼워야하지만 속도의 손실은 피할 수 없게된다. 반면 스피드만을 중시하다보면 옷이 얇아지게 되고 따라서 선수의 생명을 보장하기 어렵게 된다. 더군다나 얇은 경기복을 착용하면 심리적으로도 위축돼 대담한 레이스를 펼치기도 힘들다.
 
'경기력'과 '안전'이라는 극한의 딜레마를 최대한 해결하기 위해 모터사이클 레이서들은 자연히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경기복만을 고집하기 마련이다.

 
▲'도쿄 모터사이클 챔피언쉽 2007 '에서 우승한 미국의 Bryan 선수가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 챔피언에 오른 그도 '한일'이 만든 'Joe Roket'경기복을 착용했다.

'그러면 이들이 선호하는 최상의 경기복은 과연 어디서 만들까?'
 
프로 레이서의 경기복 안감을 살펴보면 10명 가운데 최소 4명은 'Hanil'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경기복을 입고 다닌다. 발음이 왠지 친숙하다.
 
그 이름의 주인은 바로 주식회사 한일(Hanil, 대표 박원홍). '모터사이클 경주복' 하나로 세계 시장의 40%를 석권하고 있는 대전 연고 기업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한일은 약 8천만 달러 규모(공장도가 기준)로 추산되는 세계 프로용 경주복 시장 중 40%에 육박하는 3천만 달러 분량의 수출고를 기록했다. 수출이 회사 매출액에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100%에 달한다.
 
한일의 제품을 수입하는 회사들의 이름도 쟁쟁하다. 일본의 난카이(Nankai,南海), 이탈리아의 알피네스타(Alpinestar), 미국의 죠 로켓(Joe Rocket) 등 각국 최고의 브랜드가 한일에게 제품을 가져다 팔고 있다.
 
일본은 이미 시장의 80%를 장악해 독점체제에 돌입했으며, 유럽시장 역시 꾸준한 공략을 통해 40% 점유율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미국시장에 새롭게 진출해 10% 가량의 시장을 개척, 세계 '3대 빅 마켓'을 질주하고 있다.
 
박원홍 한일 사장은 "'90년 500만 달러에 이어 '06년 30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달성하기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며, "미국시장 공략에 주력하는 한편 기존 거래처와의 신뢰 강화를 통해 세계시장 점유율 100%를 이루는 그날까지 정상을 향한 레이스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평균 근속 15년 숙련공들' + '스카이빙(skiving)' 기술 = '대박'
 
▲한일의 공장에는 재고가 없다. 만들면 바로 팔릴 뿐더러, 상품 퀄리티 유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원자재만을 보관한다.
한일이 이처럼 세계 정상 수준까지 우뚝 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스카이빙(skiving)'에 대한 노하우 때문이다. 스카이빙이란 가죽을 얇게 깎아내는 피혁 가공공정을 말한다.
 
경기복은 탄력 있고 보호성이 높은 소가죽을 외피로 사용하고 팔·다리 관절과 늑골 및 척추 부위에는 강화플라스틱 및 각종 특수소재로 제작된 보호용 패드를 몇 겹이고 겹쳐 만든다.
 
각 파트의 이음새는 당연히 여러 겹의 소재가 겹쳐져 두꺼워지기 마련이다. 평균 3밀리미터 두께의 소가죽을 몇 장만 겹쳐도 1센티미터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한일의 경기복과 여타 업체의 아마추어용과 결정적인 품질 차이가 발생한다. 제봉부위가 1센티미터만 도드라져도 무게와 공기저항이 늘어나고 만다. 특히 두꺼운 이음새 탓에 몸을 움직이기 불편해지고 착용감도 떨어진다.
 
한일은 특유의 노하우가 집적된 스카이빙 기술을 활용해 평균 4겹의 가죽을 덧대면서도 5밀리미터 이하 두께로 이음새를 마감한다. 상대적으로 얇은 두께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장을 덧댈 수 있어 안전성도 더욱 배가된다.
이 기술을 통해 경량화와 안전성을 동시에 추구하는데 성공, 레이서들의 환호를 얻었다. 프로 라이더들은 다른 경쟁업체의 경기복 보다 3~4배나 비싼 한일의 제품(100만 원선)을 사는데 아무 주저없이 자신들의 지갑을 연다.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넓직하게 설계된 한일의 사무실
 
이렇듯 한일이 대단한 기술을 갖추기까지는 많은 땀과 노력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스카이빙 기술에 있어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것은 다름 아닌 일본. 당시 한일은 일본기업의 하청을 받던 조그만 회사에 지나지않았다고.
 
그러나 한일은 일본으로부터 전수받은 스카이빙 기술을 끝까지 수작업을 고집했고 일본은 이를 기계에 의존해 '손맛'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세밀한 수작업의 정성과 그에 따른 경험이 축적되어 한일은 스카이빙 기술을 더욱 업그레이드 시키는 경지까지 올라 한 때 일본의 하청업체였던 회사가 이제는 일본시장을 손바닥 위에 놓고 주무르는 상황을 끌어낸 것이다.
 
박원홍 사장은 "직원들의 평균 근속년수가 15년을 넘어 선다"며, 한 벌 한 벌에 15년 이상 축적된 장인(匠人)들의 솜씨가 배어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박 사장은 또 "우리와는 체형이 다른 외국인들의 착용감을 고려, 일본·독일 등 세계 각국에 프로 테스트 라이더를 두고 있는 점도 경쟁력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바이어와의 직접 만날 때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샘플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며 "평균 3~4회의 피드백을 거쳐 최고의 착용감과 보호성을 갖춘 제품만을 내 놓는다"고 말했다.
 

▲상하의 일체형 경기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원홍 사장. 아직 로고가 붙지 않아 다소 심플해 보인다.

◆창업주 박은용 회장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러면 오늘의 한일을 일궈낸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박원홍 사장의 부친이자 창업주인 박은용 회장(한일 회장 겸 한국무역협회 대전충남무역상사협의회 회장)이다. 그는 한일을 차리기 전까지 18개의 업종에 종사할 만큼 왕성한 사업욕을 가진 인물, 말하자면 타고난 사업가이다.
 
"말그대로 걸음마를 떼자마자 심부름을 하며 50원, 100원 꾸준히 모아나갔지. 어려서도 청량음료 대리점, 밀가루·연탄 판매 등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했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되니, '다과점'을 하나 차릴 돈이 모입디다. 학교 다니면서 다과점을 운영했어요."
 
군 복무로 다과점 사업을 접은 박 회장은 제대하자마자 다시 의자공장을 차렸다. 이후 책상·칠판 생산에도 뛰어들었고 심지어 이불 도매에 자개농 판매점까지 차렸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던 사업은 다름 아닌 '봉재사업'이다. 다들 사양산업이라고 손을 뺄 때 그는 오히려 '경쟁업체가 사라진다'며 껄껄 웃었다고 할 정도다.
 

▲베트남 하노이에 하청공장을 두면서 베트남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박은용 회장. 왕성한 사업욕에 수준급 일어·영어 실력까지 겸비했다

하지만 한일도 막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값싼 제품을 쏟아내는 중국·인도 등 신흥공업국가들의 물량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책상·의자 만들어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봉재사업에 쏟아 부었지. 그래도 여의치 않아 집에다 재봉틀을 18대 들여놨소. 망했단 소린 듣기 싫었던 탓이지. 단지 '한일'은 명맥만 유지하던 셈이었지요."
 
끝까지 남은 28명의 직원들은 사력을 다해 일했다. 경기복 뿐만 아니라 '바느질거리'가 있다면 어떤 것이고 마다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이들의 솜씨는 정교해지고 일본에까지 입소문이 나게 됐다.
 
"뒤집어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만든다는 것이 나와 우리 직원들의 철학이었소. 고객들이 우리가 만든 제품의 가치를 알아준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디다."
 
박 회장은 "사업 외에도 대전·충남무역상사협의회장까지 역임중이라 눈코 뜰 새가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보고 싶다"는 농반 진반의 말을 건넨다.

(주)한일 Profile
설립 : 1974년 4월 1일
자본 : 190억원
매출 : 255억원 (2006년 기준)
주소 : 대전광역시 중구 용두동 164-5번지
전화 : 042-252-5151
팩스 : 042-254-5151
홈페이지
: http://www.senupy.co.kr
직원수 : 1천400여명 (대전 및 국내 100 여 명, 중국 웨이펑(威鵬)공장 1천300여명)
 

▲ 한일 사옥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