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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생활/직장생활

'유재석표'는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이여영] 요즘 방송가 최고의 인기 연예인이 유재석(35)이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이름 앞에는'국민 MC'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국민 가수''국민 배우'는 많았어도 '국민 MC'이라는 칭호를 받은 방송인은 한 명도 없었다. 실제로 유재석은 MC로서는 유일하게 MBC '무한도전', KBS '해피투게더', SBS '일요일이 좋다 하자GO' 등 공중파 방송 3사의 간판급 예능 프로그램을 모두 석권했다.
 
유재석의 성공 요인과 매력에 대해서도 별로 이견이 없다. 분위기를 살려내는 절묘한 입담이야 방송인의 필요조건이라고 치자. 그보다 더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늘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다. 게스트를 띄워주기 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자기 비하도 마다하지 않는다. 겸손함과 성실성, 그리고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태도는 유재석을 대표하는 캐릭터이자 스타일이 됐다. 이른바 '유재석표'다.
 
그렇다면 이런 '유재석표'가 직장에서도 통할까. 방송은 이미지를 만들어 키워나가는 곳이지만, 직장은 좀 다르지 않을까. 언젠가는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가 바닥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로 물고 물리는 치열한 전쟁터란 점은 방송과 비슷하지만, 직장은 팬도 후원자도 없이 홀로 싸워 살아남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도 착하기만 한 유재석 스타일의 직장인이 성공할 수 있을까. 직장인 10여 명에게 물었다.
 
답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유재석표 직장인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의 입사 2년차인 박지영씨는 "독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보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착해 보이는 쪽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반면 차보슬(한국증권선물거래소.입사 5년차.이하는 입사 연차)씨처럼 정반대의 의견도 있다. "유재석 표로는 솔직히 직장 생활이 힘들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어느 직장에나 있게 마련이다. 이들한테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실력도 별 의미가 없게 된다."
 
두 가지 의견 중에서도 후자, 즉 유재석 표가 직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쪽이 더 우세한 편이다. 유재석은 연예인이라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직장인들은 그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우선, 거절을 잘 못하고 남부터 배려하는 것이 오히려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윤경식(남광토건.1년)씨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행동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는 면은 있지만, 일과 관련해서는 사람들이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볍게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런 스타일의 약점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하급자에게 싫은 소리를 잘못하고, 그러다 보면 권위나 능력도 평가절하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김종국(한국경영자총협회.4년)씨는 "유재석 같은 유형은 말단 직원 시절에는 장점이 될 수 있겠지만 중간 관리자 급으로 올라가면 어려움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둘째, 설령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가식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착한 사람은 '착한 척한다'고 통한다는 것이다. 홍화선 아나운서(목포 MBC.2년)는 "실제로 전략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조직 내에서 오히려 적을 키울 수도 있다"고 믿는다. 가식적인 인간형으로 비칠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야심가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경우 당연히 견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김효진(천재교육.3년)씨는 "면전에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척하지만, 누군가 잘 되면 뒤통수를 칠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입사 연차에 따라 유재석 표 직장인의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일수록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보는 반면, 경력 사원일수록 성공 가능성을 적게 본다. 직장 생활의 이면을 많이 본 사람일수록 착한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한다. 나원일(제일모직.8년)씨는 "직장에서 살아남기는 하겠지만, 성공하기는 힘들 것"이란 견해를 내놓는다. 세계적인 컨설팅그룹인 딜로이트사의 평사원에서 시작해 경영진까지 오른 양동표(41년) 고문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 유재석표 직장인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직장인이 직장 생활의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약 가늘고 길게 하는 것이 직장 생활에서의 성공이라고 믿는다면, 유재석 표는 유용하다. 반면 짧더라고 굵게 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본다면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겸손하고 성실하고 먼저 남을 배려하는 유재석 스타일을 남다르게 해석하는 독특한 견해도 있다. 예를 들자면, 유재석의 착한 이미지는 철저한 변신의 결과라는 것. 실제로 그는 1991년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한 후 까칠한 이미지를 고집했고, 그 결과 10여 년의 무명 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 후 이미지를 180°바꿨고, 그 덕분에 방송가를 평정했다. 증권선물거래소의 차보슬씨는 "그렇게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다면, 어느 직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가에서도 데뷔 초기 실제로는 착한데도 까칠한 이미지로 실패했던 유재석이, 실은 점점 까칠해지는데도 착한 이미지로 변신해 성공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유재석씨에게도 '당신이 직장인이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답변을 거부했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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