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P 10년의 발자취- (중)] '춘추전국' 경쟁구도의 변화상
1995년 SAP의 진출과 함께 태동한 국내 ERP 시장은 이후 2000년초반까지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격전장이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너나없이 뛰어들어 각축을 벌였고, 국내 기업들도 '한국형'이란 이름을 내걸고 외국 솔루션들에 도전장을 던졌다.
특히 ERP란 개념과 솔루션 개발에서 한발 앞서 있던 외국 기업들의 진출은 국내 기업 정보화 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당시 ERP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세계 1위 업체 독일의 SAP를 필두로 네덜란드의 바안(Baan), 미국의 오라클과 SSA, 제이디에드워즈, QAD 등이 주요기업들이었다. 독일, 네덜란드, 미국 3국의 기업들이 한국의 ERP 시장 선점을 위해 초기 기세싸움이 뜨거웠다. ERP 시장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들 가운데 피플소프트를 제외하고 모두 일찌감치 상륙했던 셈.
'한국형'을 앞세웠던 국내 기업으로는 영림원, 한국하이네트, 소프트파워 등이 초기 국산 ERP 시장을 주도했고 뉴소프트기술, 삼성SDS, KAT시스템, 코인텍 등도 뒤따라 가세했다. 이후 ERP를 내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2000년을 넘어서면서 수백개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 현재, 시장의 구도는 '격변'했다. ERP 업계 자체의 지각변동은 지난해와 올해 절정을 이루었고, 이후 새로운 지형아래 새로운 격전을 준비하고 있다.
◆ 춘추전국 시대를 지나 양강구도 고착화
SAP가 국내에 진출했던 1995년 이후 2000년까지 5년여동안, 국내 ERP 시장은 대기업, 그 가운데서도 제조업종이 주요 공략대상이었다.
ERP가 막 소개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선두기업들이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치렀던 시기다.
대기업 시장에서 각축을 벌인 기업들은 SAP를 필두로 네덜란드의 바안, 미국의 오라클과 SSA가 SAP의 강력한 견제세력으로 꼽혔고 제조업 분야의 중견 전문업체 QAD가 다크호스로 지목됐다. 당시 유력 업체로 꼽혔던 피플소프트만이 국내 진출을 미루고 있었다.
피플소프트는 인사관리 분야에 강점을 지닌 기업. 그런데 서구의 인사관리 프로세스를 담고 있는 소프트웨어를 국내 기업에 적응하기에는, 문화적 특성과 이에 기반한 인사관리 프로세스가 너무 많이 달랐다. 피플소프트가 국내 진출을 서두르지 않았던 이유로 꼽힌다.
대형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한 이들 외국 ERP 솔루션간 치열한 각축전은 초기 5년여 기간동안 치열하게 전개된다. 세계 1위의 브랜드 파워와 삼성전자라는 초대형 레퍼런스를 앞세워 SAP가 꾸준히 선두를 유지했고, 당시만해도 세계 시장 2위로 꼽혔던 기업 바안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대표적 레퍼런스로 확보하며 SAP를 견제했다.
오라클도 기존 DBMS 시장의 강력한 입지를 발판으로 LG그룹 공략에 나서며 레퍼런스를 확보해 바짝 뒤를 쫒았다.
이후 2000년이 됐을 때 시장 구도는 SAP와 오라클, 양강구도가 확연해 진다.
SSA는 90년대 중반이후 IT 업계 전반에 휘몰아친 '클라이언트서버(CS)' 환경에 적응이 늦어지면서 98년이후 점차 시장에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 SSA는 당시 IBM의 'AS400' 기반 ERP 솔루션의 강자로 주목을 받았지만, 시장은 유닉스 기반의 오픈환경으로 재편되는 시기였다. 바안도 한국중공업 수주 이후 이렇다 할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실패하고, 본사 차원의 어려움이 겹쳐지면서 국내 시장에서 조용히 모습을 감춘다.
3~4년간의 '춘추전국' 시대는 어찌보면 싱겁게 끝나고 만 셈이다.
◆ 포스코 'PI' 프로젝트를 잡아라
한국오라클이 2000년 이후 SAP코리아와 함께 확실한 양강구도의 주역으로 떠오른 결정적인 배경으로 포스코의 'PI 프로젝트'를 빼놓을 수 없다.
1999년초 포스코는 '업무혁신(PI)'이란 이름으로 회사 업무 전반을 개혁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ERP 도입을 선언한다. 세계 최대규모의 철강공장의 ERP 프로젝트인 만큼 전 세계 ERP 솔루션 업체들이 긴장했다.
SAP와 오라클이 접전을 펼쳤고, 초기 우세한 고지를 점했던 SAP를 막판에 제치고 오라클이 이 프로젝트를 따낸다.
전체 정보시스템 구축 예산만 2천억원에 달했던 이 대규모 프로젝트의 핵심이 ERP였다. 당시 수주전에서 SAP는 다 잡은 고기를 놓쳤는데, 래리 앨리슨 회장이 직접 지원에 나설 만큼 적극적이었던 오라클에 뒤집기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오라클은 우리 정부를 상대로 대정부 로비를 펼쳤다 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오라클은 "준비작업에만 20억원을 들였다"고 했을 만큼 총력전을 펼쳤다. 별도 조직을 꾸려 6개월여를 합숙하면서까지 시험시스템을 만들었고, 오라클의 전 해외지사가 총동원되다시피 지원에 나서 결국 프로젝트를 따냈다.
세계적 규모의 철강회사에서 전사적으로 ERP를 도입하는 것은 첫 사례였던 만큼, 세계가 주목했던 이프로젝트를 통해 오라클은 ERP 시장에서 전기를 마련했다. 포스코 프로젝트 덕분에 오라클의 ERP가 기능적으로 더욱 개선됐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 오라클의 공격적인 도전,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2000년 이후 SAP와 오라클의 양강구도가 굳어졌지만, 시장은 다소 침체에 빠진다. 세계적인 IT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경제가 휘청였고 이는 ERP 시장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꾸준히 국내 시장 1위를 달리던 SAP코리아도 2001년이후 2~3년간 실적부진에 적자를 면치 못했을 정도.
이 기간동안 세계 ERP 시장도 재편에 들어간다.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펼쳐진 거대한 인수합병(M&A) 드라마가 이어진다.
쇠락하던 SSA가 2000년 7월 극적인 회생의 길을 걷는다. 투자전문 그룹인 고어스 테크놀로지 그룹(Gores Technology Group)에 인수되면서 SSA GT(System Software Associates Global Technology)로 이름을 바꾸고 재도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
이후 2년여동안 권토중래 내실을 다진다. 이 과정에서 연이은 인수합병을 통해 제품군을 확장한다. 2001년 7월 영국의 중소기업용 ERP 솔루션 업체인 맥스인터내셔널을 인수하고, 2002년 4월 CA의 물류 솔루션 제품군인 '인터비즈'를 인수했다. 그리고 2002년말 회계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인피니엄(Infinium)'을 사들였다.
2003년에는 왕년의 ERP 강자 바안(Baan)을 인수해 눈길을 끌었고 이후 지난달 이피파니 인수까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새로운 도약을 노리고 있다.
시장 재편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오라클의 피플소프트 인수. 그에 앞서 피플소프트는 제이디에드워즈를 인수한 바 있다. 결국 오라클은 강력한 경쟁자 두곳을 모두 손에 넣게 된 셈이다. 지난해 12월 피플소프트를 인수한 오라클은 이어 올 3월 SAP와 인수경쟁끝에 유통 솔루션 전문업체 레텍을 인수했고, 9월에는 CRM 솔루션 업체 시벨시스템즈도 손에 넣었다.
채 1년도 못되는 사이 벌어진 숨가쁜 인수합병을 마무리짓고 오라클은 이제 '퓨전(Fusion)' 이란 이름으로 거대한 ERP 제품 통합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물론 SAP와 최종 혈투를 벌이겠다는 각오다.
인수합병을 통한 시장 재편 움직임에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다. 호시탐탐 ERP 시장은 노려온 마이크로소프트가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레이트플레인즈, 내비전, 아삽타, 솔로몬 등 중견 ERP 업체들을 연이어 인수했다.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업체 마이크로소프트가 손대지 않고 있던 '마지막' 영역인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본격 진출한 것이다.
올 하반기부터 시작해 그동안 인수한 솔루션들을 '다이내믹스'란 이름으로 통합해 차례로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ERP 사업을 내년부터는 가동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트는 그동안 글로벌 협력업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국내 시장에 제품을 공급해왔다.
오라클이 DBMS의 영향력을 발판으로 ERP 시장에서도 입지를 다져왔듯,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운영체제의 독점적 지위와 영향력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ERP가 국내에 들어온 지 이제 10년. 시장 구도는 어느새 SAP와 오라클,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소프트웨어 3대 거인의 각축전으로 변모한 상황이다. 세계적 시장구도의 재편은 고스란히 국내에서도 재연될 예정이다.
이들 3자가 또 향후 격전을 벌일 전장이 중견 및 중소기업, 이른바 SMB 시장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이 시장은 그동안 국산 ERP 업체들이 어렵게 지켜온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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